테미오래 역사


대전의 시대를 열다 충청남도청 이전



조선 시대에는 도(道)를 관찰하는 사람을 관찰사(觀察使)라고 했으며, 행정업무를 보는 관청을 감영(監營)이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조선총독부는 관찰사(觀察使)를 도장관(道長官)으로, 감영(監營)을 이름을 도청(道廳)으로 변경하였다.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은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을 하게 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도청 이전을 사수하기 위한 공주 주민들과 도청 이전을 환영하는 대전 주민들은 극렬하게 대립하였다. 조선총독부는 ‘대전이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하며 인구 면에서도 공주를 능가한다.’는 의견을 들며 이점이 많다는 명분으로 이전을 추진하였다.

충청남도는 대전읍에 도청부지 매입을 일임했다. 대전읍에서는 즉각 토지매수에 나서 오늘 날의 중구 선화동 일대에 1만여 평의 구릉지를 적지로 선택하였다. 이 일대의 땅은 공주 갑부 김갑순(金甲淳)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는 당시 평당 4원 정도의 금액으로 대지를 매입하였다.

충청남도청은 1931년 6월 착공하여 1932년 9월에 준공하고 이듬해 10월 개청식을 진행하였다. 당시 공사비는 170,065원(오늘날 대략 70~80억)가량 소요되었다. 1960년에는 충청남도청사 건물을 3층으로 증축공사를 진행하였다. 2002년엔 등록문화제 제18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충남도청의 이전으로 대전은 근대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게 된다. 충남도청이 이전하면서 대전 시가지 확장과 정비가 진행되었다. 대전역과 도청 간의 도로가 확장되고, 대전경찰서·법원 등 행정기관이 도청 인근으로 이전되면서 주택·관사·상가·학교 등이 들어서고 신규 유입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대전천 서부지역의 농경지가 시가지화되었다. 종전 대전천 동부지역에서 서부지역으로 시가지가 크게 확장되었는데, 일본인 거주자는 현재의 원동·중동·정동지역에서 선화동·은행동·용두동으로, 조선인 거주지는 인동·신흥동·대동지역에서 선화동·부사동·용두동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당시 건축, 철도부설, 군수 사업 및 시설 확충 등에 조선인 노동력이 필요하여 타지역 인구 유입이 급증하였다. 또한 일본인 집단 거주지역인 본정, 춘일정, 영정과 대흥정 일부를 대상으로 한 상수도 공사가 1931년 6월에 시작하여 1934년 3월에 완공되었고, 1934년 제정된 조선총독부의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1938년 대전시가지 계획의 확정 등 급격한 인구 유입과 생활기반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눈에 띄게 발전한다.

그렇게 도청의 이전과 함께 중심도시로서 자리매김을 해왔던 대전은 2012년 말 충청남도청사가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80여년에 걸쳐 발전해온 대전시대는 사실상의 막을 내리고 또 다른 시대로 도약하고 있다.


테미오래 소개


전국 유일의 관사촌 충청남도관사촌



충청남도관사촌은 충청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1932년 충남도지사와 고위 관료들이 주거할 목적으로 도청에 인접한 대흥동 별장지대에 지사관사(知事官舍)를 포함(1호, 2호, 3호, 4호, 5호, 6호 관사)한 7개의 관사가 건립되었다. 당시 건축은 한국과 서양 그리고 일본의 건축 양식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4호 관사는 소실되어 현재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1970년대 4개의 관사가 추가로 건립되어 현재 10개의 관사가 남아 있으며, 전국에서 관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관사단지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1930년대 건축양식과 특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는 충남도지사공관은 대전광역시 문화제 자료 제49호로, 제1호, 제2호, 제5호, 제6호 관사는 등록문화제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관사촌은 현대사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먼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으로 피난 온 이승만 대통령은 충남도지사공관을 임시숙소로 사용하면서 UN 연합군 요청과 비밀리에 대전방송 관계자를 불러 6·27 특별방송을 내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1950년 7월 12일 외교, 장관들 사이에 “주한 미군의 지위 및 재판관할권”에 이야기를 나누고 한·미 간의 각서교환 형식으로 충청남도지사관사에서 이루어졌다. 1950년 7월 15일엔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에게 이양한다는 ‘군국 통수권 이양에 관한 위임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실제로 충청남도관사에서 이러한 협정이 이루어졌는지는 에 대한 기록이 없어 추정만 하고 있으며, 앞으로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할 부분이다.

2012년 말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이곳에 살던 충청남도지사와 관료들도 떠나게 되어 충청남도관사촌은 공가로 남았었다. 대전광역시는 관사촌 활용 방안에 대한 전문가 의견 취합과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충남도로부터 관사촌 매입하였다. 이후 대대적인 수리와 복원 작업을 시행하여 새로 산책로를 조성하고 비공개였던 9개 관사를 전면 개방하게 되었다.

2018년 시민 공모를 통해 관사촌의 새 이름을 테미오래로 정하였다. 테미오래는 둥그렇게 테를 둘러쌓은 작은 산성 ‘테미’와 동네의 골목 안 몇 집이 한 이웃이 되어 사는 구역이란 뜻의 순우리말 ‘오래’를 합성한 말이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유한 지명인 테미와 관사촌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순우리말이 들어가 ‘테미와 관사촌의 오랜 역사’, ‘테미로 오래’ 등의 중의적인 뜻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