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 테미오래와 온돌2019-03-2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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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지사관사기타신축도면부분 , 국가기록원 소장, http://www.archives.go.kr

 

 

테미오래 근현대전시관I(공관)에는 1곳의 온돌방이 위치한다. 현재는 개축 보수되어 원래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우나, 1932년 당시 건축 도면을 통해 아궁이, 구들장, 고래바닥, 연도까지 온돌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당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온돌에 관한 인식은 192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경제적 이유와 위생적인 이유를 들어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 이었으나, 1930년대에 들어 온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대되었다. 따라서 관사 여중실에 국한되었던 온돌은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확대되고 애용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인들이 온돌을 애용하게 된 것과 관련하여 일본인 葛西東男는 당시 朝鮮建築을 통해 한국의 온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일본인의 거주형식도 좌식이기 때문에 비교적 온돌에는 친숙해지기 쉬웠으며, 오랫동안 온돌에 친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이 애용되는 일면의 이유는 경제적이라는 점과 관리의 간단함 등에도 있겠으나, 추운 한겨울에 느끼는 쾌감은 물론이거니와 서리가 처음 내릴 경의 온돌의 기분, 그리고 여름에는 또 반대로 나무그늘 밑의 시원한 바위위에 누운 듯 한 기분 좋은 느낌도 있어 온돌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테미오래 근현대전시관I(공관)에 있는 온돌방은 당시 일본인들의 적극적인 온돌 수용의 결과물로 겨울은 물론이며 사계절 가족이 함께 생활 할 수 있는 가족실의 역할을 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 p. 255~257 참조, 김상훈,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온돌에 대한 인식변화와 온돌개량, 대한건축학회논문집, 計劃系 2211(통권 217), 200611

** ​p.23, 葛西東男, 溫突槪觀, 朝鮮建築193, 19403(p. 257, 위의 글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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